별빛

소설 2024.10.27 댓글 큐널 블로그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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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가 여기에 처음 올 때부터 거기 누워 있었다.
그녀는 그 수많은 규칙과 규정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살아가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가끔씩 그녀가 일어나 있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나는 그녀에게 묻곤 했다.
이 어찌 보면 아무 의미도 없고 제약이 많은 일에 자원하고 이걸 계속하고 있는 이유가 뭐냐고.

그럴 때면 그녀는 대답했다.

'나'를 찾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상했다.
이곳은 실험실에 불과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싶다면, 진짜 세상으로, 밖으로 나가봐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나는 '나'라는 것은 결국 다양한 것을 경험해 봐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임무를 위해 어떤 복잡한 규칙과 규정이 있는 게임 같은 가상 세계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찾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푸른 초원을 알기나 할까?
그녀는 어릴 적부터 실험실에서 연구원 a의 딸로 태어나, 계속해서 실험에 투입되었다.
성인이 되었을 때는 그녀의 어머니는 죽었고, 그녀에게도 자유가 주어졌다.

그녀가 세상을 두려워할까 이를 보정해 주는 프로그램과 여러 심리 상담도 주어졌다.
밖으로 나갈 재활 훈련은 그녀에게 충분히 제공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실험실에 남기를 택했다.
게다가 어느샌가부터 더 이상 연구가 아니라 경쟁적으로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감행되는 실험이자, 모험에 그녀는 뛰어들었다.

가상세계. 코드네임, 이드로.
따듯한 온수 속에 몸을 누이고, 머리에 전극을 연결하고는 잠에 빠진 채로, 복잡한 규칙과 규정이 있는 게임과도 같은 그 세계에서 그녀는 어떤 풀리지 않을 문제를 푸는 임무를 맡았다.

나는 그리고 그녀의 상태를 지켜보는 153번째 연구원이자 관리인이었다.
그녀는 주로 그 세상에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의 세계보다 몇 배는 더 복잡한 규칙과 규정이 존재하는 세계.

그곳에서 일반인으로서는 풀 생각도, 풀리지도 않을 문제를 풀어내고 또 풀어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임무라고 불렀다.
뇌를 너무나 많이 혹사시키는 일인지라 사람들은 말리고, 또 다른 지원자를 빠르게 받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서 나오지 않았다. 그 일을 계속했다.
사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사람들은 감사할 따름이었다.

보통 사람은 1초도 채 들어 있지 못할 곳이어서 그녀는 전 세계에서 아주 높은 레벨에 위치해 있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에 사람들은 온통 혈안이었으니까.
다만 그녀 스스로의 목표는 그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공허했다.
가끔씩 일어나 있을 때 보이는 얼굴은 언제나 무표정이었다.
깨어나는 것 자체가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뇌기능이 정상인지, 그녀가 살아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나는 그녀를 깨워야 했다.
자고 있을 때는 너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 도저히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깨워야 했다.

어느 날은 나에게 화를 냈다.
거의 근접했는데, 왜 나를 깨웠느냐고.
이제 몇 문제만 더 풀면 목표에 가까울 뻔했는데..

나는 그 세계가 궁금해졌다.
대체 무슨 세계일까.

알고는 있었다.
다수의 계산식과 논리 정보가 주어지고 그것을 하나로 잇고 분류하고 새로운 규칙과 규정을 만들면 눈썹만 한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이라고.
누가 만들었는지, 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끝이 존재한다고.

처음에 이 시스템이 발견되었을 때는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그저 재미로.
이미 가상 세계로의 연결은 20세기부터 이루어졌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다들 게임이라면 환장을 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그런 게임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세계에 접속한지 3초 만에 뇌가 강력한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심지어 몇몇은 머리가 타버리거나 뇌사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얼굴까지 화상을 입은 채, 겨우 살아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최초로 노숙자 한 명이 접속과 보상에 성공하고 그 보상이 국가적 차원에서 엄청난 자원이었음이 드러나자, 여기에 맞는 적합자를 엄청나게 대우해 주기 시작했다. 그 노숙자가 갑부가 되었음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이다.

그녀는 지원자 중 한 명이었고, 듣기로는 지원자 다수가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잡혀 왔음에도 그녀는 그 특유의 무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적극을 머리에 연결하고는 첫 문제를 완벽하게 풀어내고 보상을 돌려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돈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이 일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를 관장한 최고 연구진들은 뇌의 부담으로 지속하는 것은 안될 것이다, 어떻게든 이상 증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이를 무시하고 감행한 끝에 7년째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

내가 상태를 점검하던 어느 날, 그녀가 평소보다 신나서 자기 얘길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주로 그 세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설명해 봐요.

그것은 마치 오랜 꿈과 같지. 저 편의 나는 이리로 오라고 손짓해. 잡고자 하지만 깨어나. 어쩌면 이건 초대인지도 몰라. 다른 차원에서의, 다른 세계에서의.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하지만 계산식을 풀고 문제를 새롭게 만들어야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이 아니던가요?

맞아. 하지만 그걸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어느샌가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그것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어.

연구원들이 실적 자랑을 하고 술 마시러 가던 게 생각났다. 한심한 사람들..

희망이야 그건.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희망. 나는 이 세계에 살면서도 사는 것 같지 않았어. 내가 추구하고 바래야 할 무언가 다른 것이 항상 있는 것 같았지. 나는 그렇게 태어난 것 같았어. 연구실에서만 실험 대상으로 살았다는 건 과장된 얘기야. 언론이 나를 지키기 위해서 퍼뜨린 기사지. 난 사실은 일반 내 또래들이 할만한 일들은 다 해봤어. 친구도 사귀고, 연애도 해보고, 맛집도 다녀보고, 술도 마시고, 학교도 다니고, 직장도 다니고, 하지만 난 그런 모든 일련의 과정 중에서 어떤 채워지지 않는 공허를 느꼈어. 세상의 모두가 일평생 한 번쯤은 이걸 느끼는 것 같더군. 하지만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어. 술과 노래로 그걸 금방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 같더군. 하지만 그건 망각이지 정답이 아니잖아. 난 무언가 더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리고 우연히 좋은 기회로 난 여기에 오게 됐지.

-

어느 날 나는 그녀를 보던 와중 그녀가 드디어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세계에 들어가 꿈을 꾸는 와중에는 항상 눈을 감는데, 그때 내가 한눈을 파는 사이 그녀는 눈을 뜨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보고 하려고 했는데, 그녀가 내 팔목을 잡았다.

-

당신은 스스로를 가두고 있어요. 내 말을 듣고 거기서 나와요.

안돼. 난 그럴 수가 없어. 고지가 코앞이다. 결국 누군가는 할 일이지 않은가. 자원을 받고 자율적으로 운영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우리는 세계와 경쟁하고 있어. 거기에서 이 나라가 뒤처질 순 없지, 그런 날이 오면 전 국민이 여기에 들어가게 될 거다. 아니, 하지만 그건 나한텐 사실 아무 상관이 없어. 나한테는 그 보상이 전부가 아니야. 아니, 사실 그 보상이 나한텐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거기서 그 이상을 봐. 거기에는 완전한 모습의 인간이 있어. 빛으로 이루어진, 진정한 나를, 그것은 마치 별과 같지.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의 본래 모습의 회복을. 거기에서 난 봤어. 하지만 거기에 가기 직전 난 항상 깨어나. 이봐, 그러니 부탁이 있어. 나를 깨우지 말아 주겠어?

하지만 그럼 난 징계를 받아요.
그게 무슨 의민진 알겠죠?

알아, 알아, 하지만 날 믿어. 내가 널 구해줄 거야.
네 앞에 난 다시 나타날 거야.

-

나는 지금 감옥에 있다. 그리고 아마도 곧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1세기 전에 열렬한 여론에 사형제가 부활했다.
내가 국가적인 책임이 뒤따르는 연구소 규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그녀를 깨우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죽었다.
연구소에서.

그녀가 몸이 축 늘어진 채로 들것에 실려 나가던 순간을 기억한다. 마지막까지도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거기서 그녀는 행복했다. 그녀는 자신이 찾는다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을 거기에서 찾았을까? 아니면 그저 뇌가 뜨겁게 달아올라서 그냥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망상 속으로 사라진 것일까?

내가 있는 방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다. 가끔씩 내가 자는지 자고 있지 않은지 헷갈릴 때가 있다. 잠이 명확하지 않으니까 삶도 명확하지 않다. 그저 흐릿하다. 여기선 선명할 필요도 없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창문 밖으로 무언가 빛이 보였다. 오후인데도 햇빛보다 환한 빛이. 나는 작은 창문으로 달려가 거기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리고 거기엔 그녀가 있었다.
빛으로, 시간과 공간, 물질세계를 초월한 완전한 인간.

안녕. 데리러 왔어.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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