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아

소설 2024.10.27 댓글 큐널 블로그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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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아는 고약한 친구였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와서는, 그게 뭐냐고 말하면서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는 끝에는 내 그림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면 나는 말없이 그 찢어진 조각들을 가방에 쓸어담고는 새로운 종이를 꺼내서 다시 같은 것을 그렸다.
나는 온전한 것을 다 그리고 싶었기에.
그 애도 참 엄청났던 게, 내가 똑같은 그림을 그리면 금세 다시 와서는 또 트집을 잡고 그림을 찢었다.
그걸 몇 개월동안 매일 한 20번 정도 반복했는데..
정말 창과 방패의 싸움이지 않은가?

나탈리아는 어릴 적부터 이래야만 한다는 게 확실한, 자기 주관이 뚜렷한 친구였다.
내 그림도 그래서 그렇게 쉽게 찢어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애의 그런 주관은 친구도, 선생님도, 부모님도, 의사도 못 말렸다.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자기 주관이 뚜렷한 것과 남에게 무례한 것은 다르지 않느냐고?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때 그 애랑 나는 5살이었다.
우리는 같은 어린이집을 다녔다.
자신의 주관을 뚜렷하게 밝히면서 남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는 법을 모를 나이였다.
다음 해에 우리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그 애는 빠르게 철이 들었다.
더이상 자기 주관에 맞지 않는다고 내 그림을 찢지 않았다.

그후에 나탈리아를 다시 만나게 된 건 7년이 지난 후 학교에서였다.
왜냐하면 그 애가 철이 들고, 내가 마음껏 한 장당 한 가지 주제의 그림을 끝까지 그리게 된지 얼마 안되었을 때, 나는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다.
근데 나탈리아도 재작년 여름에 여기로 이사를 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같은 반이 되었다.

그 애는 어릴 때 일을 잘 기억했고 내 그림을 몇 개월간 매일 20번씩 연달아 찢은 것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나탈리아는 내 바로 앞자리였는데, 틈만 나면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 쉬는 시간이면 몸을 빙글 돌리고는 미안했다고 하면서 내가 그리는 것을 연신 칭찬하며 빤히 바라보곤 했기 때문이다. 나는 늘 혼자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생전 다른 사람에겐 눈길도 주지 않던 나와 다르게, 학교의 다른 애들과도 친했던 나탈리아가 대부분의 쉬는 시간에 다른 애들과 나가 놀지 않고 내 그림을 빤히 봤다는 것은 그만큼 그 아이의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나는 말수가 매우 적었다. 그리고 말을 잘 할 줄도 몰랐다. 그래서 나탈리아에게 '그렇게 어렸을 때 일은 괜찮다'는 말을 멋들어지게 할 자신이 없었다. 할 수야 있겠지만, 상상해보면 그건 도무지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그렸다. 수업시간에.
자리가 바뀌었고, 나는 대각선에서 나탈리아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일 그렸다. 그리고 아래에 '괜찮아'라고 썼다.
안타깝게도 그 그림은 선생님에게 빼앗겼고 다시는 되찾지 못했다.

그래도 결과는 나쁘지 않았던 게, 그걸 계기로 나는 온갖 미술 대회에 다 나가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상복이 좋은 편이었다. 말수도 없고 궁상맞게 그림이나 그리던 애가 꽤 괜찮은 학교 자랑거리가 되었다.

방학이 두 번, 도중에 졸업식. 그리고 나탈리아는 다른 학교로, 나는 또다른 학교에 진학했다. 그후로 한동안 소식을 못 듣다가 3학년 때 그 아이가 또 내 학교로 전학을 왔다.
이번에는 저번과 다르게 아무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고, 늘 같이 지내는 이는 나 뿐이었다.
그 아인 나와 같이 등교할 때, 어딘가 잠시 놀러 다닐 때 빼고는 항상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듣고 보니 다른 학교에서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내 생각엔, 나탈리아는 아직 뚜렷한 자기 주관을 다른 이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고 관철시키는 방법을 완전히 깨우치지 못한 것 같았다.
그 애가 그런 얘길 직접 해줬을 때는 조금 놀랐다.
아이는 후회하며 이미 늦었다고 자책했다.

나는 집에 와서 좀 생각 하다가, 어릴 적에 모아두었던 찢어진 그림들과 추억이 조각조각 담긴 상자를 열었다.
이튿날 나는 나탈리아에게 그 아이가 조각냈던 내 그림을 테이프로 붙인 것을 선물해주었다.
그 아이는 환하게 웃었다.

다시 다른 학교. 그리고 또 다른 학교. 나는 어느샌가 그림을 전공하고 있었고, 그 애는.. 어떻게 잘 사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tv를 봤는데 그 애가 나왔다. 그 애는 무대에 서서 멋있게 잘 지내고 있었다.

3년 뒤, 졸업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00 병원이었다. 그 아이, 나탈리아는 많이 아팠다. 그 아이는 나를 찾고 있었다. 나는 간신히 짬을 내어서 찾아갔다.

병실은 조용했으며, 그 아이 혼자였다. 옆에 있는 탁자에 내가 중학생 때 선물해준 그림이 놓여 있었다. 내가 탁자를 조용히 두드리자 눈을 감고 있던 아이가 눈을 뜨고는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그림을 다시 나에게 주고 싶었다며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달에 한 번 정도 와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건강해지지 못했고 나는 그 말을 끝내 듣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선물한 그림 뒤에 내가 그리지 않았던 작고 귀여운 글씨체로 내 이름과 하트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뿐이었다.

에필로그

나는 작은 미술 학원을 열었다. 처음엔 작았다. 근데 점점 커져서 나 말고도 다른 선생님들이 몇몇 생겼다. 나는 말수없고 무뚝뚝하지만, 그림을 잘 그리고 어째선지 애들이 비교적 다른 선생님들보다 좋아하는 선생님이 되었다. 나는 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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